1. 출근길에 전화벨이 울리면 둘 중 하나다. 회사와 관련된 내용이거나 아니면 어머니의 전화. 어느 쪽이든 받기 전에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도 최근 유진에게 더 신경 쓰이는 쪽은 어머니였다. 서른이 넘은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확실히 서른네 살이 되자 어머니의 닦달은 심해졌다. 예전에는 알아서 여자를 구해오겠지, 어...
17. 입안이 바짝 말라 목구멍까지 짝짝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지독한 갈증에 사빈은 몇 번이나 침을 삼켰지만 소용없었다. 곤란한 건, 이 순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아니, 어떤 대답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받아넘겨야 하는가가 더욱 중요했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목소리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받아넘겨야 하...
15. 새벽에 다시 한번 약을 먹고 물수건을 갈고 이번엔 꽤 깊고 긴 잠을 잤다. 밤새 거칠고 높던 숨소리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가라앉아서 잠든 모양이 그럭저럭 불편해 뵈지는 않자 준태는 겨우 안심하고 방 밖으로 나와 집 안 공기를 환기하고 냉동실에서 꽝꽝 얼린 소고기를 꺼내 해동하기 시작했다.
Hello, sweet honey “아,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볼록 나온 배를 툭툭 두드리며 우렁차게 인사하는 명수를 향한 유진의 시선은 그야말로 따뜻했다. 자식 배불리 먹인 어미와 비슷한 눈초리였다. 반면 주머니에 지갑을 찔러 넣는 이찬의 표정은 좀 부루퉁했다. 아니, 상당히 부루퉁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심기 불편한 것을 눈치채지 못...
14. 아침부터 눈이 펑펑 왔다. 창문을 활짝 여는 준태의 표정이 밝았다. 그는 신이 난 강아지처럼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엄청나게 오는데? 제대로 쌓일 것 같아!” 현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눈이 오건 말건, 상관할 게 뭐냐는 얼굴이었다. “나가자. 오랜만에 눈 맞으면서 드라이브도 하고 극장에도 가고……” “안 돼.” 딱 잘라서 한 번에 ...
2. 자신이 남자에게 잘 먹히는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따위는 해 본 적 없는 유진이었다. 그야 물론, 남자치고 깔끔하고 예쁜 인상에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늘 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곧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그건 서로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런데 이제는 좀 헷갈리기 시작했다. 강이찬 하나일 때는 사람 감정이라...
1. 한겨울의 새벽녘은 무척이나 서늘해서 유진은 잠결에 몇 번이나 이불을 끌어당겼다. 꼭꼭 목까지 끌어 덮어도 자꾸만 흘러내리는지 조금 지나면 다시 이불 없이 휑해진다. 그럴 때마다 잠에서 깨다 보니 여간 짜증 나는 것이 아니다. “아으…….” 네 번째였다. 세 번이나 이불 때문에 잠을 설치고, 네 번째가 되자 짜증이 폭발했다. 끙끙거리는 얕은 신음을 내며...
15. 달랑 나흘 동안 진행된 추가 녹음 기간이 우현에게는 두어 달 가까이 계속된 본 녹음보다 더 힘들었다. 4일 내내 사빈은 쌀쌀맞았고 녹음과 관련된 이외의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래도 말이 많지 않고 녹음 들어가면 목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말을 아끼곤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누가 보기에도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거다. 누...
2. 며칠 만에 유진은 가뿐한 컨디션이었다. 어제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맛있는 저녁상에 포식하고 간만에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잔뜩 아이처럼 굴다가 어머니가 봐주신 잠자리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고 포근하게 푹 자고, 아침부터 어머니의 된장찌개와 맛있는 두부부침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출근했다. 세상이 이렇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언제까지 혼자 상 차리...
14. 한바탕 분란을 일으킨 스타일리스트 팀이 떠난 후에야 형준은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물론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서 말이다. 연희에게는 매정하고 야무지게 말했지만, 상대가 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래도 저래도 형준은 곤이 무서웠다.
사랑하는 애어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